흥미롭게도, 한국은 이 세 번째 경로를 실험할 독특한 위치에 있다. 왜 한국인가?
첫째,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스마트폰 사용률, 디지털 리터러시 모두 최상위권이다. n²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수적 기반이다. 동시에 한국은 아직 플랫폼 독과점에 완전히 지배당하지 않았다. 네이버와 카카오라는 토종 플랫폼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대안적 모델을 시도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둘째, 한국은 공동체 문화와 디지털 혁신을 결합할 수 있다. 서구는 개인주의가 강하다. 중국은 국가주의가 강하다. 한국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강한 공동체 의식과 빠른 기술 수용이 공존한다. "공동의 절제"를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다.
셋째,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미-중 사이에 있다. 도전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양 극단 모델의 장단점을 모두 관찰할 수 있다. 제3의 길을 모색할 동기가 있다. 미국식 자유방임도, 중국식 국가통제도 아닌, 한국적 균형 모델.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시+산+학 플랫폼" 모델을 상상해볼 수 있다. 시(정부)는 공공 데이터 인프라를 제공하고 기본 규칙을 설정한다. 산(기업)은 혁신적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한다. 학(대학/연구기관)은 독립적 평가와 윤리적 가이드를 제공한다. 세 주체가 협력하면서 견제한다. Mariana Mazzucato가 "미션 이코노미"에서 제안한 "목적 기반 거버넌스"의 한국적 구현이다.
판교를 작은 규모로 시작할 수 있다. 판교는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여기서 "절제 기반 네트워크 경제" 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데이터 배당: 플랫폼이 사용자 데이터로 얻는 n² 가치의 일부를 사용자에게 환원한다. 알래스카의 석유 배당금과 유사하다. 데이터는 21세기의 석유다. 그 가치는 공유되어야 한다.
알고리즘 투명성: 주요 추천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공개한다. 완전한 코드 공개는 아니더라도, 어떤 요인이 어떻게 가중치를 갖는지 설명한다. 독립적인 감사 기관이 정기적으로 검토한다. Bruce Schneier가 "데이터와 골리앗"에서 제안한 "데이터 권력의 분립"이다.
주의 경제 규제: 플랫폼이 사용자의 일일 사용 시간을 추적하고, 일정 한도를 넘으면 경고한다. 선택은 사용자에게 있지만, 정보는 투명하게 제공된다. 담배 경고 문구와 유사한 개념이다.
공공 AI 인프라: 정부가 기본적인 AI 모델을 오픈소스로 제공한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도 n² 경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 도로, 전력과 같은 공공 인프라의 디지털 버전이다.
이런 실험이 성공하면, 확장할 수 있다. 부산, 서울, 그리고 전국으로. 나아가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협력할 수 있다. 일본, 대만, 싱가포르. 이들도 유사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함께 대안적 n²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더 큰 비전은 "네트워크 공동체"다. n² 시스템을 플랫폼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설계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분산 아키텍처, 블록체인, 협동조합 모델을 활용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숙의 민주주의, 시민 참여, 공동 거버넌스를 실천한다. 경제적으로는 n² 가치를 공유하는 메커니즘을 만든다.
유토피아적 환상이 아니다. 에스토니아는 이미 디지털 정부와 전자 민주주의에서 선구자다. 바르셀로나는 "데이터 주권" 실험을 하고 있다. 대만은 vTaiwan 플랫폼으로 온라인 숙의 민주주의를 실천한다. Daniel Innerarity가 "지식의 민주주의"에서 제시한 정보 흐름의 민주화가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대안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한국은 이를 더 큰 규모로, 더 체계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