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지털 기술의 근본적 변화: 데이터 네트워크 {#1.-디지털-기술의-근본적-변화:-데이터-네트워크}
"네트워크의 가치는 연결된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 - Robert Metcalfe
모든 변화의 출발점인 데이터 네트워크는 Metcalfe의 법칙에 이론적 기반을 둔다. "네트워크의 가치는 연결된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이 법칙은 2개의 노드가 4의 가치를, 10개는 100의 가치를, 1만 개는 1억의 가치를 창출한다는 기하급수적 성장의 원리를 보여준다. 이러한 네트워크 효과는 데이터 경제의 근본적 작동 원리를 제공하는데, 데이터 자체가 지닌 네 가지 고유한 특성과 결합되면서 전례 없는 가치 창출 메커니즘을 형성한다.
첫째, 데이터의 비배타성(non-rivalry)은 한 사람의 사용이 다른 사람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네트워크 효과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둘째, 한계비용이 제로에 수렴하는 규모의 경제는 데이터의 무한 복제와 재활용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 서로 다른 데이터가 결합될 때 발생하는 융합 효과(synergy effect)는 개별 데이터의 단순 합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넷째, 맥락 의존성(context dependency)은 동일한 데이터라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를 갖게 한다. 이러한 특성들의 상호작용은 개인 데이터가 개별적으로는 무의미하지만 집합적 맥락에서는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갖게 되는 구조적 비대칭을 만들어낸다.
더 많은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비배타성과 규모의 경제는 AI 모델 학습의 효율성을 기하급수적으로 향상시킨다. Jones and Tonetti(2020)가 분석한 바와 같이, 데이터의 비경합성(non-rivalry)은 전통적인 생산요소와 달리 무한한 재사용을 가능하게 하여 지속적인 혁신의 원천이 된다. 융합 효과는 거래 데이터, 행동 패턴, 위치 정보 등 이질적 데이터의 결합을 통해 신용평가, 자산 토큰화, 개인화된 금융 상품과 같은 혁신적 서비스를 창출하며, 이는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확장시킨다.
이러한 데이터 네트워크의 부상은 산업사회의 근간이었던 노동 중심적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있다. 산업화 이후 현대 사회는 노동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왔으며, 개인의 정체성은 직업과 전문 역량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조직 내 위치와 직책이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였으며, 공동체 역시 노동력의 재생산과 배치를 중심으로 구조화되었다. 가정은 노동력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기본 단위로 기능했으며, 사회 전체가 노동을 통한 생산성 증대와 그 성과의 분배에 초점을 맞춰 조직되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AI의 광범위한 노동 대체는 이러한 노동 중심 사회의 토대를 붕괴시키고 있다. Brynjolfsson and McAfee(2014)가 『제2의 기계시대』에서 예견한 바와 같이, AI는 단순 반복 작업뿐 아니라 복잡한 인지적 과업까지 수행하면서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재정의한다. 더 이상 노동 능력과 직무 역할이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규정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이는 사회 계층 구조와 공동체 조직 원리에 패러다임적 전환을 야기한다. 노동에서 해방된 개인들은 새로운 정체성의 근거를 모색해야 하며, 공동체는 노동력 재생산이 아닌 새로운 조직 원리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근본적 변화는 이하에서 분석할 계층 구조의 재편과 공동체 성격의 전환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2. 생산, 소유, 분배의 근본적 변화 {#2.-생산,-소유,-분배의-근본적-변화}
"가장 중요한 진보는 기계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함께 일하는 것에서 올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인지 능력을 최고로 결합함으로써, 우리는 어느 한쪽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The Second Machine Age, 2014)
디지털 시대의 사회 변화는 현재의 경제 질서에도 막대한 변화를 가져온다. 생산을 할 때에 가장 중요했던 노동 시간의 가치는 급감하며 노동을 하여도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러한 생산의 변화는 소유와 분배의 질서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한다.
AI 혁명은 인지적 자동화와 인간 증강을 초래한다. Brynjolfsson과 McAfee(2014)의 『The Second Machine Age: Work, Progress, and Prosperity in a Time of Brilliant Technologies』는 현재의 기술 혁명이 산업혁명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를 명확히 제시한다. "현재는 물리적 노동이 아닌 인지적 과업의 자동화 시대"라는 그들의 주장은 AI가 단순 반복 작업뿐 아니라 의사결정, 창작, 분석 등 고차원적 인지 활동까지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제시한 '증강(augmentation)' 개념이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배가시킨다. MIT의 실증 연구는 이를 뒷받침한다. AI 지원을 받은 고객 서비스 직원들의 생산성이 평균 14%, 초보자의 경우 34% 향상되었다(Brynjolfsson et al., 2023). 이는 AI가 숙련 노동자의 암묵지를 디지털화하여 초보자에게 전달함으로써 경험 곡선을 압축하기 때문이다.
World Economic Forum(2025)의 보고서 『Asset Tokenization in Financial Markets: The Next Generation of Value Exchange』는 디지털 금융의 혁명적 본질을 포착한다. "토큰화는 조각 소유를 가능하게 하고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게 한다"는 핵심 주장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 소유권의 본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전통적 자산은 법적으로 정의되지만 기술적으로는 비활성 상태다. 반면 토큰화된 자산은 스마트 계약을 통해 소유권과 이전 규칙을 자산의 디지털 표현 자체에 내장시킨다. 이는 자산을 '프로그래밍 가능'하게 만들어, 자동으로 분할되거나 다른 토큰과 결합하여 새로운 복합 금융 상품을 만들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중개자로서의 국가의 필요성을 제거하고 탈국가 경제의 기반을 형성한다.
Tirole(2003)의 양면 시장 이론은 플랫폼 독점이 우연이 아닌 의도적 설계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플랫폼은 한쪽에 보조금을 지급해 다른 쪽에서 수익화한다"는 메커니즘은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작동한다(Rochet & Tirole, 2003).
구글이 검색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다. 이는 방대한 사용자 기반을 구축하여 광고주에게 판매할 '상품'을 만드는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러한 양면 시장 구조는 경쟁자가 진입하려면 사용자와 광고주를 동시에 유치해야 하는 '닭과 달걀' 문제를 만들어 강력한 진입 장벽을 형성한다.
이 3대 경제 동력은 서로 얽혀가며 기존 경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AI 혁명은 개인 역량 강화와 AI 노동 대체라는 양면적 효과를 동시에 창출한다. AI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례 없는 생산성 향상을 경험하면서 1인 기업가로 변모할 수 있는 반면, AI가 대체할 수 있는 업무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정규 직업 노동에서 밀려나게 된다. 이는 생산과 소비의 개인화를 가속화하면서, 전통적 기업 조직보다는 AI Agent 경제와 개인의 기업화가 새로운 경제 활동의 중심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디지털화는 소유권 개념 자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넷플릭스, 스포티파이로 대표되는 구독 경제는 소유권에서 접근권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며, 블록체인 기반의 조각 소유는 개인이 미시적 규모에서도 마이크로 자본가가 될 수 있는 길을 연다. 이러한 변화는 국경을 초월한 디지털 자산 거래를 통해 탈국가 경제를 형성하며, 전통적 국가의 경제 통제력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플랫폼 독점은 이러한 분산과 개인화의 흐름을 역설적으로 새로운 중앙집권으로 귀결시킨다. 소수의 거대 플랫폼이 경제 활동의 인프라를 장악하면서 국가도 통제할 수 없는 새로운 권력 구조를 만들어내고, 플랫폼 접근성과 알고리즘 혜택을 독점하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의 빈부 격차를 극대화한다. 이는 전통적 자본-노동 갈등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계급간 갈등을 야기한다.
3. 생산의 변화: 개인 역량의 변화 {#3.-생산의-변화:-개인-역량의-변화}
디지털 전환은 생산의 주체인 '개인'의 역량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며 경제 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 첫번째가 개인 역량의 증강이다. AI는 개인의 지적, 창의적 역량을 비약적으로 증강시킨다. 과거에는 거대 조직이나 숙련된 팀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복잡한 분석, 정교한 설계, 고도의 창작 활동을 이제는 AI의 지원을 받는 개인이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인간과 기계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는 협력의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The Second Machine Age』(2014)에서는 "가장 중요한 진보는 기계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함께 일하는 것에서 올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인지 능력을 최고로 결합함으로써, 우리는 어느 한쪽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하며 인간-AI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러한 증강은 단순한 생산성 향상을 넘어, 인간 지능의 확장을 예고한다. AI와의 결합을 통해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한 연산 능력과 분석력을 갖추게 된 개인은 문제 해결과 가치 창출에서 전례 없는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Raymond Kurzweil은 『The Singularity is Nearer』(2024)에서 이러한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묘사한다. "우리는 AI와 융합하여 생물학적 한계를 수백만 배 뛰어넘는 연산 능력으로 자신을 증강할 것이다. AI로 우리는 지능과 의식을 깊이 확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특이점'이 온 세상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특이점을 향한 여정의 중간쯤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AI 기술의 민주화는 개인이 아이디어만으로 가치를 직접 창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AI 기반 툴은 콘텐츠 제작, 소프트웨어 개발, 상품 디자인 등에 필요한 전문 기술의 장벽을 극적으로 낮춤으로써, 개인이 곧 '1인 기업'이자 '1인 크리에이터'가 되도록 돕는다. Martin Ford는 『Rule of the Robots』(2021)에서 "인공지능은 완전히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게 하며, 인공지능의 도입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들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변화의 신호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더 나아가 AI가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창의성'과 '아이디어 발상'의 영역에 진입하면서, 성장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기술 발전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낳고, 그 아이디어가 다시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선순환을 AI가 무한에 가깝게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Charles I. Jones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AI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영역에 진입한다면, 유한한 시간 내에 무한대의 성장(특이점, 'singularity')을 달성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언급하며, 경제 성장의 근본적인 공식이 재정의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끝으로 개인의 역량이 증강되고 가치 창출이 자동화되는 흐름은, 경제 활동의 위임이 가능한 '에이전트 경제(Agentic Economy)'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고도로 자율화된 AI 에이전트가 개인을 대신하여 24시간 내내 최적의 경제적 판단과 거래를 수행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 AI 에이전트들은 개인의 선호와 목표에 따라 상품을 비교하고, 가격을 협상하며, 구독 서비스를 관리하고, 자산을 운용하는 등 복잡한 경제적 의사결정을 자율적으로 처리한다. Rothschild와 동료 연구자들은 『The Agentic Economy』(2025)에서 "어시스턴트 에이전트가 소비자를 대신하여 수백만 개의 기업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에이전트 경제가 도래하게 된다"고 예측했다. 이것은 우리가 곧 마주하게 될 새로운 경제 질서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다.
4. 디지털화: 소유의 변화 {#4.-디지털화:-소유의-변화}
디지털 전환은 소비와 소유의 방식에 있어 근본적인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누가 소유권을 행사하는가’, ‘그 소유는 어떻게 분산되는가’와 같은 새로운 문제로 대체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넘어서, 자산 분배 구조, 사회적 권한 구조, 그리고 경제 질서 자체를 재편하는 흐름이다.
Jeremy Rifkin(2000)은 『소유의 종말』에서 "우리는 물건 자체보다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 같은 통찰은 Tien Tzuo와 Gabe Weisert(2018)의 『Subscribed』를 통해 기업 전략의 수준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이들은 “소비자는 더 이상 소가 아니라 우유를 원한다”는 비유를 통해 구독경제의 본질을 설명한다.
디지털 환경은 이러한 변화의 확산을 가속화하고 있다. AI는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화된 서비스 추천, 정기 결제 관리, 수요 예측까지 수행하며, 접근을 중심으로 한 소비 방식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사용자와 서비스 간의 지속적 관계를 설계하고 유지하는 방향으로 기업의 수익 모델을 재구성하고 있다.
구독경제가 소비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면, 조각 소유(fractional ownership)는 소유의 개념 자체를 기술적으로 재구성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자산 토큰화(tokenization)는 과거 제도적·물리적으로 제한되었던 고가 자산의 분할 소유를 프로그래밍 가능한 디지털 권리로 전환시켰다.
Stephen McKeon(2018)은 "암호자산은 매우 낮은 거래비용을 바탕으로 분산 소유를 가능케 하였으며, 시장 유동성과 가격 발견 기능을 재구성하였다"고 평가하였다. Xia et al.(2025)은 실물자산의 토큰화가 유동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고 있으며, 특히 부동산 분야에서는 기존에 배제되었던 소액투자자들의 시장 진입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사용자는 플랫폼 내의 데이터 기여도나 활동에 따라 자산의 일부를 보상받게 되며, 이는 참여 기반 소유권이자 데이터 기반 인센티브 구조로 기능한다.
AI 기술의 발전은 개인이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행사하는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Rothschild et al.(2025)은 "AI 에이전트가 소비자 대신 수백만 개의 기업과 상호작용하며 경제 활동을 자동화하는 에이전트 경제(agentic economy)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선호에 따라 구독 서비스를 자동 선택하고, 토큰화된 자산을 분산 투자하며, 실시간으로 수익을 재조정한다. 복잡한 경제 활동이 자율적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Misztal(2025)은 “소유권은 이제 법이 아닌 코드에 의해 관리되며, 스마트 계약은 자산의 이전과 활용 조건을 사전에 프로그래밍할 수 있도록 한다”고 지적한다. 이로써 소유권의 행사 주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전환되는 현상이 시작되고 있다.
소유권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코드화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 계약은 자산의 보유, 이전, 분배 조건을 자동화하며, 실시간 거래와 분할 소유를 가능하게 만든다. Misztal(2025)은 이를 “스마트 계약 기반의 자산 설계 구조”로 정의하며, 자산 그 자체가 하나의 프로그래머블 객체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NFT(대체 불가능 토큰), 실물 부동산 토큰화, 디지털 라이선스, 자동화된 상속 분배 시스템 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인간의 판단 개입 없이 사전에 정의된 조건에 따라 자산이 자동 이동하거나 분배되는 구조를 구현하고 있다. 이는 소유를 기술적 조건에 따라 구성 가능한 객체로 전환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디지털 경제에서는 소유와 이용, 거래와 보유의 경계가 점차 해체되고 있다. 구독경제는 '소유하지 않고도'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고, 조각소유는 '보유하지만 사용하지 않는' 구조를 제공한다. 이러한 경계 해체는 기술적 혁신뿐 아니라, 자산과 권한의 분배 방식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유도한다.
특히 플랫폼 기반 소유 구조에서 벗어나,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고 소유하며 운영하는 프로토콜 경제와 DAO(탈중앙화 자율조직)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World Economic Forum(2025)은 “토큰화는 조각 소유를 가능하게 하고,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게 한다”고 평가하며, 탈국가경제(post-national economy)로의 진입 가능성을 제시한다. 제도적 경계를 넘어서 커뮤니티 기반의 분산적 권한 구조로 이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유권의 기술적 전환은 곧바로 사회적 평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해당 기술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분배되는가이다. Xia et al.(2025)은 데이터 기여도 기반 조각소유 구조를 통해 참여자에게 소유와 보상의 권리를 분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Izadin과 Yusof(2024)는 부동산 토큰화 사례에서 소액 투자자들이 고액 자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적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소유의 민주화는 단순한 자산 접근 확대를 넘어, 커뮤니티 기반 경제 시스템의 토대가 된다. DAO 기반 커뮤니티에서는 자산 소유 뿐 아니라, 정책 결정, 수익 분배, 참여 보상 등 실질적 거버넌스 권한이 사용자에게 분산되며, 이는 디지털 기술을 통한 소유권의 사회적 재구성을 가능하게 한다.
안전망 확대로 이 계층이 10%에서 5%로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5%p의 인구 역시, 가장 진입 장벽이 낮은 AI 기반 플랫폼 경제를 통해 새로운 소득 활동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현재 35%의 기반 위에, ‘AI 강화 계층’에서 유입되는 25%p와 ‘AI 소외 계층’에서 유입되는 5%p가 더해져 최종적으로 65%라는 새로운 다수 계층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이동이 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 구조적 변화의 뒷받침 속에서 이뤄진다. 첫번째 구조는 ‘전문성의 민주화’다. 이선 몰릭(Ethan Mollick) 교수가 저서에서 분석했듯이(2024), AI 도구는 과거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던 코딩, 디자인, 데이터 분석 등의 기술 장벽을 허물어 누구나 쉽게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한다. 둘째는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기본소득이나 주 4일제와 같은 새로운 사회 안전망과 노동 모델의 논의는, 사람들이 생계만을 위해 전통적 일자리에 얽매이지 않고 AI를 활용해 자신의 관심사를 수익으로 연결하는 유연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 시장의 구조적 재편뿐만 아니라, 일과 소득, 전문성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꾸는 거대한 흐름이며, 이 과정에서 AI는 핵심적인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5. 플랫폼 독점: 분배의 변화 {#5.-플랫폼-독점:-분배의-변화}
디지털 전환은 권력의 작동과 불평등의 재생산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마누엘 카스텔(Manuel Castells)이 통찰한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는 물리적 공간과 선형적 시간을 해체하고, '흐름의 공간'에서 주요 노드를 장악한 소수로부터 권력이 나오는 새로운 질서를 창출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거대한 조정의 공백을 플랫폼이 독점으로 장악하면서, 네트워크에 연결된 자와 배제된 자, 규범을 생산하는 자와 통제되는 자 간의 극단적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있다.
장 티롤(Jean Tirole)의 양면시장 이론이 밝히듯, 플랫폼 독점은 우연이 아닌 의도적으로 설계된 시장 지배다. "한쪽에 보조금을 지급해 다른 쪽에서 수익화한다"는 메커니즘은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경쟁자에게 극복 불가능한 '닭과 달걀' 문제를 만든다. 구글이 검색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방대한 사용자 기반을 구축하여 광고주에게 판매할 '상품'을 만드는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메칼프의 법칙(V∝n²)에 따른 기하급수적 가치 증가는 임계점을 넘어선 플랫폼의 승자독식을 필연화하고, AI 시대의 데이터 플라이휠(Data Flywheel)은 이를 영속적으로 고착화시킨다.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가 폭로한 '감시 자본주의'는 플랫폼이 인간의 경험 자체를 무상 원자재로 취급하여 '행동 잉여'를 추출하고, 이를 예측 상품으로 가공하는 새로운 축적 체제임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빅테크는 개인이 사회 속에서 학습한 지식을 대규모로 수집하여 '학습의 분업'을 독점하고, 사회 전체의 인식 구조를 장악한다. 주보프는 이것이 사회적 판단력과 지식의 민주성을 파괴할 것이라 경고한다.
결과적으로 디지털 자본의 본성은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이 지적했듯, 생산성 향상의 대가로 고용과 분배의 기제를 무너뜨리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에릭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과 앤드루 맥아피(Andrew McAfee)가 경고한 생산성과 소득 간 연결고리의 붕괴는 단순한 불평등 심화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이며,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가 예견한 '무용계급'의 출현은 경제적 배제를 넘어 존재론적 위기로 확산될 전망이다. 플랫폼이 구축한 이 새로운 권력 구조는 전통적인 계급, 노동, 국가 중심 정치경제 모델을 붕괴시키며, 카스텔이 경고한 '통제 불가능한 자본주의'를 현실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