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산의 저장 방식 {#1.-자산의-저장-방식}
1.1 현금의 종말과 프로그래머블 머니의 부상 {#1.1-현금의-종말과-프로그래머블-머니의-부상}
현금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한국은 이미 2020년부터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 정책을 추진했고, 현금 사용률은 전체 거래의 약 20%로 줄었다(Moon, 2017). 북유럽 국가들 역시 현금 사용률이 5% 미만으로 떨어지며 사실상 완전한 디지털 경제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단순히 지갑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수준이 아니다. 진정한 전환은 ‘프로그래머블 머니(programmable money)’의 등장이다.
프로그래머블 머니는 스마트 계약 기술을 통해 조건부 실행이 가능한 화폐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은 6개월 뒤 자동 소멸되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고, 교육 바우처는 인증된 교육기관에서만 사용되게 할 수 있다. 이런 기능은 단 10줄도 안 되는 코드로 구현 가능하며,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부정 사용을 원천 차단한다(Everest Group, 2024). 실제 사례로, JP모건의 Kinexys 부서는 코인베이스의 Base 블록체인에 USD 예금 토큰(JPMD)을 발행했다. 이 토큰은 전통적 은행 예금의 안정성과 블록체인의 프로그래밍 가능성을 결합해, 24시간 실시간 결제와 조건부 자동 실행을 지원한다(J.P. Morgan, 2025). 기업들은 이를 통해 공급망 금융, 국경 간 결제, 유동성 관리에서 새로운 효율성을 얻고 있다.
1.2 인간 아닌 경제 주체의 등장 - AI의 지갑 {#1.2-인간-아닌-경제-주체의-등장---ai의-지갑}
또 다른 변화는 AI가 스스로 지갑을 보유해 경제 주체로 활동한다는 점이다. 현행 법체계에서는 AI에 법인격이 없어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없지만, 블록체인 기반 지갑은 이러한 제약을 우회한다(Quantoz, 2024). 예컨대 자율주행차는 승객 요금을 직접 받거나 충전소에 전기료를 지불할 수 있고, AI 트레이딩 봇은 24시간 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 다만 안전성을 위해 여러 서명이 있어야 거래가 실행되는, 멀티시그(Multi-Signature) 구조가 도입된다. 예를 들어, ‘2-of-3’ 방식에서는 AI, 인간 감독자, 제3의 중립 기관이 각각 키를 보유하고, 중요한 거래는 최소 두 개의 서명이 있어야 실행된다. 이는 AI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인간의 최종 통제권을 유지하는 장치다(AirDAO, 2024).
1.3 자산의 토큰화 - 모든 것이 디지털로 쪼개져 거래되는 시대 {#1.3-자산의-토큰화---모든-것이-디지털로-쪼개져-거래되는-시대}
마지막으로, 자산의 토큰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영국은 2024~2029년 디지털 증권 샌드박스를 운영하며 거래의 디지털화를 실험 중이다(Bank of England, 2024). 보스턴컨설팅그룹과 ADDX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토큰화된 자산 시장은 2030년까지 16조 1,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BCG & ADDX, 2024). 부동산, 주식, 채권, 지적재산권 등 모든 자산이 블록체인 위에서 즉시 거래 가능한 토큰으로 전환된다. 특히 분할 소유권(Fractional Ownership) 덕분에 일반 개인도 과거에는 접근 불가능했던 상업용 부동산이나 사모펀드에에 소액 투자할 수 있다. 또한 스마트 계약을 통한 자동 청산과 결제는 거래 비용을 크게 줄이고, 국가 간 거래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
2. 금융의 통제 주체 {#2.-금융의-통제-주체}
2.1 AI와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금융 의사결정 {#2.1-ai와-알고리즘이-주도하는-금융-의사결정}
과거에는 은행과 정부가 돈을 통제했지만, 2035년에는 그 자리를 AI와 알고리즘이 차지할 것이다. 이미 금융 의사결정의 주체가 인간에서 AI로 옮겨가는 추세다. 스탠퍼드대학 에드 디한(Ed deHaan) 교수팀은 3,300개 이상의 뮤추얼펀드를 30년간 분석해 AI가 재조정한 포트폴리오의 93%가 인간 펀드매니저의 성과를 능가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AI는 분기마다 평균 1,710만 달러의 초과수익을 올렸는데, 이는 감정적 편향을 배제한 덕분이었다(deHaan et al., 2025). 2035년에는 마이크로 거래와 초단위 트레이딩은 100% AI가 수행하고, 대출 심사와 자산 리밸런싱의 90%도 AI가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국가 통화정책처럼 전략적 결정을 내릴 때만 인간이 여전히 주도권을 가진다. 이러한 변화는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3년 66억 달러였던 시장은 2030년 418억 달러(연평균 30.5% 성장)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Grand View Research, 2024).
은행의 전통적 지위 역시 알고리즘에 의해 약화되고 있다. 탈중앙화 금융(DeFi) 프로토콜에 예치된 총자산가치(TVL)는 2025년 초 1,290억 달러를 넘으며 전년 대비 137% 증가했다(DeFiLlama, 2025). 2035년에는 이 규모가 3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JP모건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 같은 전통 금융기관의 핵심 기능 상당수가 Uniswap, Aave, Compound 같은 스마트 계약 프로토콜로 대체될 것이다. 이미 JP모건은 블록체인 결제망을 구축하고, 스테이블코인 커스터디와 DeFi 수익 관리 서비스를 새로운 수익원으로 개발 중이다(Futurist Speaker, 2023). 결국 2035년의 은행은 예대마진으로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디지털 자산의 수탁자이자 프로토콜 관리자로 변모할 것이다.
2.2 규제의 코드화 - 레그테크와 섭테크의 부상 {#2.2-규제의-코드화---레그테크와-섭테크의-부상}
이제 규제마저 코드 속으로 들어간다. 금융 규제의 패러다임은 레그테크(RegTech)와 섭테크(SupTech)로 변화 중이다. 레그테크는 금융기관이 KYC·AML·거래 모니터링 등을 자동화하기 위해 AI·머신러닝을 도입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HSBC는 AI 기반 레그테크로 오탐률을 60% 줄였다(HSBC, 2023). 이 시장은 2025년까지 552억 8,0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Grand View Research, 2019).
섭테크는 규제 당국이 감독 업무에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AI 시스템으로 매일 170억 건 이상의 거래 데이터를 분석하며, 이상 패턴을 자동 탐지한다(SEC, 2024). 국제결제은행(BIS)은 한 단계 더 나아가 규제 요건을 아예 스마트 계약에 내장하는 ‘임베디드 슈퍼비전(Embedded Supervision)’을 제안했다(Auer, 2019).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Project Guardian을 통해 자산 토큰화와 관련된 다양한 파일럿을 추진하며 규제 적용 방안을 탐색하고 있다.
3. 가치의 집중처 {#3.-가치의-집중처}
3.1 컴퓨팅 파워의 금융화 - GPU와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토지 {#3.1-컴퓨팅-파워의-금융화---gpu와-데이터센터라는-새로운-토지}
돈은 더 이상 공장이나 부동산 같은 전통적 자산에만 머물지 않고, AI 인프라와 데이터로 옮겨가고 있다. 무엇보다 GPU와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금융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2025년 7월,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일시적으로 4조 달러를 돌파한 사건은 단순한 주가 급등이 아니라 새로운 부의 원천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CNBC, 2025). 이제 핵심 생산수단은 토지가 아니라 GPU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다. 기업들은 값비싼 장비를 소유하기보다 필요할 때 빌려 쓰며, 이 과정에서 컴퓨팅 파워 자체가 독립적인 자산으로 취급된다. 이 ‘컴퓨팅 파워의 금융화’는 곧 투자상품으로 연결되고 있다.
데이터센터 리츠(REITs, 부동산투자신탁)는 이미 전통 부동산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고, 2020년대 중반에는 연간 두 자릿수 성장을 보였다(Global X ETFs, 2024). 더 나아가 렌더토큰(Render Token)이나 골렘(Golem) 같은 플랫폼은 여유 연산력을 제공하면 토큰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탈중앙화 컴퓨팅 시장을 열었다. 심지어 대규모 언어모델이나 생성 AI 같은 모델 자체도 자산화되어, 토큰화와 분할 소유를 통해 거래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국 기업도 이 흐름의 중심에 있다. SK하이닉스는 전 세계 AI 가속기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50~60% 수준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한편, 삼성전자는 2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통해 Tesla AI6 칩 등 고객 확보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Tom's Hardware, 2025), 정부가 추진하는 622조 원 규모 ‘K-반도체 벨트’ 전략은 이러한 리더십을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3.2 데이터의 금융화 - 권리이자 배당으로 {#3.2-데이터의-금융화---권리이자-배당으로}
동시에 데이터 역시 ‘21세기의 석유’로 완전히 금융화되고 있다. 합성 데이터 시장은 2024년 3억 1,050만 달러에서 2034년 66억 달러로 연평균 35.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Global Market Insights, 2024), 데이터가 거래 가능한 완전한 자산임을 보여준다. 이는 개인 데이터 주권 강화 흐름과 맞물려 있다. 2019년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제안한 ‘데이터 배당금’은 플랫폼 기업이 개인 데이터로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를 제공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발상이었고(California Governor's Office, 2019), 한국의 마이데이터 사업은 이를 제도화한 대표적 사례다. 최근에는 데이터 협동조합과 데이터 신탁이 등장하면서 개인의 협상력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Driver’s Seat 협동조합은 우버·리프트 운전자들의 주행 데이터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판매 수익을 조합원과 나누는 모델을 성공적으로 실현했다(Rockefeller Foundation, 2023; O’Donovan 2021). 이는 데이터 경제에서 개인 권익을 보호하면서도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3.3 AI 에이전트 경제 - 새로운 성장 엔진과 재분배 {#3.3-ai-에이전트-경제---새로운-성장-엔진과-재분배}
여기에 더해, AI 에이전트 경제가 새로운 GDP 성장 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한국은 2017년 자동화 투자 세제 혜택을 축소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간접적 ‘로봇세’로 불린다(The Register, 2017). 빌 게이츠 역시 “사람이 세금을 내듯 로봇에도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세수 공백을 보완하고, 기술 발전의 과실을 사회 전체로 나누기 위한 장치다. 오늘날 자율주행차가 최적 경로 정보를 0.001달러에 구매하고, 스마트 공장의 로봇이 예비 부품을 0.0005달러에 빌리는 등, 인간의 개입 없는 초소액 거래가 매일 수십억 건 발생하고 있다. 이 기계 간(M2M) 거래는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망을 통해 실시간 처리되며, 거래 비용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심지어 기업 경영에도 AI가 진입했다. 중국의 넷드래곤(NetDragon)은 2022년 AI를 자회사 CEO로 임명했으며(Independent, 2022), DAO와 AI의 결합은 향후 인간 임직원 없는 완전 자율 기업의 등장을 예고한다.
4. 세계의 판이 바뀐다 - 새로운 금융 패권 경쟁 {#4.-세계의-판이-바뀐다---새로운-금융-패권-경쟁}
4.1 금융 패권, AI와 데이터가 쥔다 {#4.1-금융-패권,-ai와-데이터가-쥔다}
2035년의 금융 패권은 월스트리트 같은 전통적인 금융 중심지가 아니라, AI 인프라를 얼마나 잘 갖추고 데이터와 규제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달려 있다. 미국과 중국은 AI 기술 경쟁을 금융 분야까지 넓히고 있고, 유럽연합은 ‘규제 표준’을 앞세워 존재감을 지키려 한다. 반면 싱가포르, 스위스, 에스토니아 같은 작은 나라들은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면서 빠르게 디지털 금융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은 국경을 넘는 디지털 금융을 다룰 수 있는 글로벌 규칙을 만들고 있다. G20에서 논의되는 ‘디지털 브레튼우즈’ 구상에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규제, AI 금융 모델의 윤리 기준, 국가 간 데이터 이동 협약, 디지털 자산 과세 원칙이 포함된다(IMF, 2023).
가장 까다로운 문제는 관할권이다. 블록체인과 탈중앙화금융(DeFi)은 국경이 없기 때문에, 거래가 발생했을 때 어느 나라 법을 적용해야 하는지가 불명확하다. 금융안정위원회(FSB)는 2023년 암호자산 규제 기준을 발표하면서 각국이 비슷한 규칙을 도입할 것을 권고했지만, 실제 제도가 뿌리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FSB, 2023).
4.2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전쟁 {#4.2-글로벌-스테이블코인-전쟁}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이미 글로벌 금융 패권의 핵심 전장으로 부상했다. 2025년 8월 기준 시장 규모는 2,8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DefiLlama, 2025; Gate.com, 2025), 전통 금융과 디지털 화폐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미국은 GENIUS 법안 통과와 함께 스테이블코인을 달러 패권 강화 도구로 삼았다(Latham & Watkins, 2025; NPR, 2025). 1:1 달러 준비금 의무화, 은행 수준의 건전성 규제를 통해 제도권 신뢰를 확보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암호화폐의 개척지”로 선언했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e-CNY)를 대중화하며 3억 2,500만 지갑, 누적 거래액 9,860억 달러를 달성했다(Wikipedia, 2025; S&P Global, 2024). 동시에 NFT와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7.2초 만에 거의 제로 비용으로 거래를 정산할 수 있는 시스템인 mBridge 프로젝트를 통해 SWIFT 대체망을 구축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참여한 석유 거래를 e-CNY로 결제하는 데 성공하며 글로벌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Blockhead, 2025; BIS, 2024).
시장 자체는 테더(USDT)와 서클(USDC)이 양분하고 있다. 테더는 1,4601,600억 달러(점유율 6064%), 서클은 680억 달러(24~30%) 규모를 차지한다(Cointelegraph, 2024; CoinMarketCap, 2025). 두 코인이 처리한 연간 거래액은 27.6조 달러로, 비자와 마스터카드 합산을 넘어섰다(Circle, 2025). 특히 서클은 2025년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통해 제도권 금융의 신뢰를 확보했다(SEC, 2025; Fortune, 2025).
4.3 미국 스테이블코인 정책과 권력 네트워크 {#4.3-미국-스테이블코인-정책과-권력-네트워크}
그중,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전략은 단순한 금융 혁신을 넘어, 정치 권력과 기업 네트워크가 긴밀히 결합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피터 틸, JD 밴스, 일론 머스크, 데이비드 색스로 이어지는 이른바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 네트워크는 트럼프 행정부의 암호화폐 정책에 전례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Fortune, 2024; Bloomberg, 2025). 틸의 파운더스 펀드는 암호화폐 투자에서 18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고, 그가 지지하는 밴스를 부통령 자리에 올리기 위해 1,500만 달러를 투자했다(NPR, 2024; Revolving Door Project, 2025). 밴스 부통령은 비트코인 컨퍼런스에서 “암호화폐가 마침내 백악관에 챔피언을 갖게 되었다”고 선언하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경제력의 영향력을 배로 키울 수단force multiplier)”으로 규정했다(CBS News, 2025; CNBC, 2025).
데이비드 색스는 백악관 내 “AI 및 암호화폐 차르”로 임명되기 직전 2억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 자산을 매각해 이해충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CNBC, 2025). 이러한 흐름은 정책과 이익의 교차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트럼프 가족이 세운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은 USD1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며 아부다비로부터 2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Fortune, 2025; Wikipedia, 2025). 이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국가 금융 전략의 일환으로 내세우는 동시에, 정책 결정 과정이 개인적 이익과 맞물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이를 “부패”라고 비판하며, 행정부의 암호화폐 정책이 공공 이익이 아닌 사적 이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왜곡될 위험을 경고했다(Fortune, 2025).
결과적으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정책은 금융 패권 유지라는 전략적 목표와 동시에 정치·기업 네트워크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규범 논의에서 미국의 신뢰성을 시험하는 요소가 될 수 있으며, 다른 국가들에게도 스테이블코인 정책 설계 시 투명성·거버넌스 원칙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됨을 보여준다.
5. 한국 경제의 새로운 열쇠 - 원화 스테이블 코인 {#5.-한국-경제의-새로운-열쇠---원화-스테이블-코인}
5.1 한국의 강점과 기회 {#5.1-한국의-강점과-기회}
한국은 AI 금융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충분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 첫째,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경쟁력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연산의 핵심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며, 이는 AI 인프라 경제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제공한다. 둘째, 높은 디지털 금융 성숙도다. 한국은 이미 현금 사용률이 20% 미만으로 떨어졌고, 카카오뱅크와 같은 디지털 전문은행이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셋째, 정부의 선제적 정책 지원이다. 마이데이터 사업과 디지털 뉴딜 등 적극적인 정책을 통해 금융 인프라의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됐다.
앞으로 한국이 추진해야 할 핵심 전략은 명확하다. K-Digital Bank를 설립해 AI 네이티브 금융기관의 글로벌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처음부터 AI와 블록체인을 핵심으로 설계된 완전 자동화 은행으로, 프로그래머블 머니 발행, AI 에이전트 금융 서비스, 토큰화 자산 거래 등 미래 금융의 전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또한 국가 차원의 AI 에이전트 ID 체계도 시급하다. AI 에이전트에게 고유 식별체계를 부여하고, KYA(Know Your Agent) 프로세스를 확립해 경제 활동의 추적성과 책임성을 담보해야 한다. 이는 장차 국제 표준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선도 모델이 될 것이다.
5.2 원화 스테이블코인 – 기회와 딜레마 {#5.2-원화-스테이블코인-–-기회와-딜레마}
한국은행은 2025년 6월, 소매용 CBDC 프로젝트 ‘프로젝트 한강’을 공식 중단하고, 은행 주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으로 방향을 전환했다(CoinDesk, 2025; CryptoSlate, 2025). 이는 이미 2025년 1분기에만 416억 달러(약 56.9조 원)의 자본 유출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발생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Ainvest, 2025). 일일 암호화폐 거래액은 14.9조 원으로, 코스피·코스닥 합산을 추월했다(Blockhead, 2025).
규제 측면에서는 2024년 7월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오프라인 상태에서 암호화폐를 보관하는 지갑인 콜드월렛 보관 80%와 최소 준비금 요건을 명시했다(FSC, 2024; LOC, 2024). 정부는 2025년 10월까지 별도의 스테이블코인 규제안을 마련할 예정이며, 이는 유럽의 MiCA와 싱가포르 모델을 참고하고 있다(Ainvest, 2025). 주요 시중은행(신한·하나·우리·KB)은 이미 테더·서클과 협력 협상을 진행 중이다(CoinDesk, 2025).
한국은 전통적으로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이중 전략을 유지했지만, 스테이블코인 시대에는 선택 압력이 훨씬 더 강하다(Brookings, 2025; KEIA, 2025). 미국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표준 준수를 압박하고, 중국은 무역 상호의존을 무기로 e-CNY 운용을 요구한다. 동시에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의 급격한 성장(생산 40% 증가)은 한국의 핵심 경쟁력마저 위협하고 있다(The Global Treasurer, 2024).
이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전략은 단계별 접근이다.
● 단기(2025~2026): 포괄적 스테이블코인 법안 제정, 원화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출범(목표 유통량 10조 원), 글로벌 파트너십 확보
● 중기(2026~2028): 동북아 디지털 통화 회랑 구축(한·중·일·싱가포르 연계) 통한 상호운용성 확보, 판교 디지털 자산 특구 조성, 선택적 e-CNY 상호운용성 개발
● 장기(2028~2030): 양자내성 암호 기반 금융 인프라 전환, 지속 가능한 규제 프레임워크 구축, 글로벌 디지털 금융 거버넌스 리더십 확보(SecurityWeek, 2025; MDPI, 2025)
6. 금융의 미래, 우리의 선택 {#6.-금융의-미래,-우리의-선택}
2035년의 금융 질서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돈의 저장 방식, 통제 주체, 집중처라는 근본적 원리가 재편되는 과정에 있다. 현금은 프로그래머블 머니로 전환되고, 금융 의사결정은 인간에서 AI와 알고리즘으로 이동하며, 부동산과 공장 대신 GPU·데이터·에이전트 경제가 새로운 자산 기반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효율성과 혁신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불평등 확대와 통화 패권 갈등이라는 구조적 위험을 동반한다.
한국의 전략적 선택은 특히 중요하다. 지금 우리사회가 합의를 이루어야 할 주요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 한국은 독자적인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에 협력할 것인가?
- 미·중 디지털 통화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은 어떤 포지션을 취할 것인가?
- 정부는 프로그래머블 머니를 통해 시민의 경제 활동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으며, 스마트 계약 오류로 인한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 규제 샌드박스를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가, 그리고 혁신 속도와 민주적 정당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향후 금융 질서는 외부가 만든 규칙에 종속될 위험이 크다. 특히 2025~2027년은 결정적 시기다. 이 기간 동안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기본 설계, AI 금융 규제의 틀, 데이터 경제의 규칙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 시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향후 10년간 디지털 금융 질서에서 주변적 위치로 밀려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선택의 방향을 명확히 하고, 이를 균형 있게 조율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다. 균형은 효율성과 공정성, 혁신과 안정성,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연대, 속도와 정당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정되어야 한다. 이는 고정된 해답이 아니라, 측정 → 설계 → 시민참여 → 실행 → 평가 → 보정으로 이어지는 순환적 거버넌스 모델을 통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기술은 도구에 불과하며, 그 활용 방식은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설계에 달려 있다.
한국은 지금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능동적 설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 기회의 창은 빠르게 닫히고 있으며, 2025~2027년의 선택이 향후 10년의 질서를 결정할 것이다. 지금이 바로 전략적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